🌟 서론: 예술은 우리를 불편하게 해야 하는가?
영화 『더 스퀘어』는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의 201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입니다. 스웨덴의 한 현대 미술관을 배경으로, 전시 기획자 크리스티안의 삶과 주변 사건들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 인간성의 경계에 대해 도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예술 풍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위선과 도덕적 회색지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더 스퀘어’라는 상징적 설치 작품은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이상을 담고 있지만, 그 구호가 현실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영화의 본질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영화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질문
- 도덕성과 위선의 아이러니
- 개인적 윤리와 공동체의 경계
본론
🎭 ①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편함'의 미학
『더 스퀘어』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영화 속 설치 미술 ‘더 스퀘어’는 “이 사각형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는 구절과 함께 전시되지만,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공허한 선언으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전시는 이상적인 공동체 윤리를 상징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합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통해 현대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닌 사회적 실험 도구가 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특히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거나,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는 상황에서조차도, 대부분은 침묵하거나 회피합니다. 이는 예술이 아무리 이상을 외쳐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술의 존재 목적이 현실을 반영하고 인간을 각성시키는 데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역할을 극단적으로 수행하며 관객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영화는 현대미술계의 상업성과 자극성에 대한 통렬한 풍자도 담고 있습니다. “예술은 관심을 받아야 살아남는다”는 논리에 따라, 충격적인 이미지와 자극적인 광고 캠페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술이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주류 자본에 포섭되어 소비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특히 작품 홍보를 위해 만든 유튜브 광고 영상은 윤리적 기준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극'을 우선시하며 예술과 자본의 뒤얽힘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전시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상을 담은 구조물 앞에서조차 인간은 도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먼저 고려합니다. 결국 영화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답은 씁쓸할 정도로 명확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인간 앞에서 예술은 무기력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② 위선과 도덕성의 아이러니 – 우리는 정말 도덕적인가?
크리스티안은 겉으로는 도덕성과 공공윤리를 중요시하는 현대적 엘리트입니다. 그는 공익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세련된 언변과 이미지로 ‘의식 있는 인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전개되면서 그의 진짜 민낯이 드러납니다. 스마트폰을 도둑맞은 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 전체에 협박성 쪽지를 돌리는 장면은, 공감과 정의보다 분노와 복수심이 앞서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그 개인의 이기심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도덕성’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지적합니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행동이 사실상 자기 이미지 보호에 불과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영화는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크리스티안은 후에 아이 한 명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감정입니다. 이처럼 『더 스퀘어』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조차 의심스럽게 만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크리스티안의 성적 위선도 주목할 만합니다. 기자와의 하룻밤 이후, 그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며 상대를 불신하고, 오히려 그녀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여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그의 감정은 일시적인 욕망과 자기 방어로 가득 차 있으며, 공적 공간에서 드러내는 이타적인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단지 크리스티안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윤리적 딜레마를 반영합니다. 도덕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어긋날 때는 슬며시 물러나는 태도, 정의를 주장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자기 보존에 머무는 모습. 『더 스퀘어』는 이 모든 인간적 모순을 섬세하고 냉철하게 그려냅니다. 이는 관객에게 자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에 “나는 과연 이들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유도합니다.
🧩 ③ 개인의 윤리 vs 사회적 책임 – 공동체 안에서의 딜레마
『더 스퀘어』가 가장 강렬하게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장면 중 하나는 ‘고릴라 퍼포먼스’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예술 퍼포먼스가 아닌, 인간의 본능과 공동체 윤리의 경계를 실험하는 장면으로 작용합니다. 퍼포머가 야수처럼 관객을 위협하고 불쾌한 상황이 지속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그를 제지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누군가 나서겠지”라는 생각에 침묵을 택합니다.
이 장면은 실제 사회에서도 빈번히 목격되는 '방관자 효과'를 상징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고, 각 개인은 집단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미루기 마련입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윤리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우리의 침묵과 외면이 누군가의 고통을 방치하게 되는 구조를 날카롭게 꼬집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크리스티안이 잘못된 편지를 돌린 뒤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 역시 복합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 사과는 진심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양심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잘못을 개인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그 책임이 어떻게 규정되는지도 영화는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을 다시 세워보게 할 뿐입니다.
이처럼 『더 스퀘어』는 공동체 윤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의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며, 책임을 분산시키고, 인간 본성을 시험합니다. 영화는 그 현실을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치밀하게 해부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불편한 여운을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 결론: 불편함을 느낀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더 스퀘어』는 단순한 미술관 이야기나 예술 풍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위선, 이중성, 도덕적 무감각을 거울처럼 비추는 작품입니다. 그 거울 앞에 선 우리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감독이 의도한 진정한 메시지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는 “나는 누군가를 돕는다고 했지만, 정말로 도운 적이 있었던가?”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이 진짜 옳은 일이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쉽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코미디가 아닙니다.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드라마도 아닙니다. 『더 스퀘어』는 관객이 일상 속 윤리적 선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보기 드문 사회적 예술영화입니다.
📢 당신의 '더 스퀘어'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 수많은 ‘더 스퀘어’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눈빛, 방관을 묵인하는 침묵, 말로는 옳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
📌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고 ‘당신만의 더 스퀘어’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댓글, 공유 부탁드립니다!
📌 더 깊이 있는 영화 리뷰를 계속 받아보고 싶다면 블로그를 구독해 주세요!